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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태일재단-조선일보
창간 104주년 공동기획

12대 88의 사회를 넘자

현재 우리나라 노동 시장에서는 높은 임금을 받으면서 다양한 복지 등으로 겹겹이 보호받는 대기업 정규직 12%와 낮은 임금에 사회적 안전망도 부족한 나머지 중소기업, 비정규직 88% 간 이중구조가 굳어지고 있다. 88%가 낮은 임금과 고용 불안, 불투명한 미래로 고민하는 상황은 고스란히 저출산, 노인 빈곤, 청년들의 취업 포기 등 여러 사회 문제로 이어지는 중이다.
모두가 대기업에서 일할 수 없고 비정규직을 ‘제로(0)’로 만드는 것도 불가능하다. 다만 지금의 이중구조를 조금씩 개선해 나간다면 현재 어려움을 겪거나 미래를 설계할 엄두를 내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불어넣을 수 있다. 변화를 만드는 것은 강력한 투쟁도, 시장 논리도, 자본가나 정부만의 몫도 아니다. 거제 조선소에서 시작된 변화처럼 주요 이해관계자들이 머리를 맞대고 만들어 낸 다양한 상생 시도가 사회를 바꿔나가는 계기가 된다. 본지 역시 지난 2011년 ‘자본주의 4.0′ 기획 연재를 통해 시장에 모든 걸 맡기는 신자유주의가 만든 한계를 극복하는 시도를 했다. 그리고 이번에는 전태일재단과 함께 노동시장의 이중구조를 넘어서기 위한 상생 방안을 모색한다.

1
대기업·하청업체 격차
2
대기업·중소기업 격차
3
기초 산업 노동자들의 소외
4
이름만 ‘자유로운 전문직’
5
사각지대의 마루 노동자
6
청년 노동자의 주거비 고통
7
노동시장 바깥의 라이더들
8
차별의 벽에 갇힌 노동자들
9
정착 못하는 기간제 근로자
10
깨져가는 이중구조의 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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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하청업체 격차

지난 2022년 여름, 경남 거제 대우조선해양(현 한화오션) 옥포조선소에서는 배를 만드는 핵심 작업장인 독(dock) 한 곳이 51일간 점거되는 사건이 있었다. 민노총 소속 조선 하청 업체(협력사) 노조 파업으로 인한 일이었다. 한 노조원은 아예 가로·세로·높이 1m 크기의 좁은 철제 구조물 안에 들어간 뒤 용접해 출구를 막아버린 이른바 ‘옥쇄 파업’을 했다. 대우조선 측은 경제적 피해가 수천억 원이라고 주장했고, 경찰청장이 헬기로 조선소 주변을 둘러보는 등 공권력 투입 직전에 협상이 타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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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중소기업 격차

우리나라 기업 중 근로자가 5인 미만인 기업은 약 124만개. 전체 기업의 62%에 달한다. 이런 기업에서 일하는 근로자는 약 314만명으로 전체 근로자의 17%다. 작은 기업이라도 적잖은 청년들이 큰 꿈을 품고 처음 사회로 나오는 통로가 된다. 여기서 꿈을 이루는 사람도 있지만 상당수는 금세 좌절하곤 한다. 법에서 보장하는 줄 알았던 당연한 복지의 사각지대에 자신이 서 있다는 걸 뒤늦게 알게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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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초 산업 노동자들의 소외

열여섯 살 때부터 서울 중구 평화시장에서 일한 재단사였던 전태일(1948~1970)은 늘 주변을 살피는 청년이었다. 먼지가 풀풀 나는 어두운 공장에서 하루 14~16시간씩 일하다 피가 섞인 기침을 하는 여공들을 마음 아파 했다. 1970년 11월 자기 목숨을 던지면서 “근로자도 인간이다! 일요일은 쉬게 하라”를 외친 이유다. 가파른 산업화가 진행되던 이 시기 전후 서울 곳곳에는 크고 작은 봉제·제화 공장 등 이른바 ‘도심 제조업’이 본격화했다. 우리 경제를 일으키는 데 큰 몫을 했던 기초 산업들이다. 당시 노동 현장에 뛰어든 전태일의 ‘후예’ 중 일부는 40년 안팎의 경력이 쌓인 장인(匠人)이 되어 지금도 서울 곳곳에서 묵묵히 일하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2022년 전국 봉제·제화 산업 종사자는 약 5만4000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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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만 ‘자유로운 전문직’

경기 안산시에 사는 김민선(40·가명)씨는 10년 차 프리랜서다. 2015년 육아와 일을 병행하려고 직장을 그만뒀다. 요즘은 그림 등을 사용해 온라인 강의 동영상의 줄거리를 짜는 일로 월 100만원을 벌어 살림에 보탠다. 그는 “아이를 잘 돌봤던 행복한 10년이었지만, 불공정 계약, 단가 후려치기 등 숱한 ‘갑질’과의 싸움이기도 했다”고 전했다. 한국 노동시장은 대기업 정규직 12%와 중소기업, 비정규직 등 나머지 88%로 쪼개져 따라잡기 어려운 격차가 나타나고 있다. 이 이중 구조가 기업에 속한 임금 근로자의 격차라면, 여기에 포함되지 않는 채 사실상 방치된 또 다른 수백만의 근로자 집단이 있다. 우리가 ‘프리랜서’라고 부르는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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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각지대의 마루 노동자

이동수(가명·53)씨는 아파트 바닥에 나무 소재 마루를 까는 일만 10년 해온 노동자다. 연 3500만원 안팎을 벌며 생계를 유지한다. 그는 서류상으로 ‘한 달에 7일 이하’만 일하는 사람이다. 지난해 10월 그는 경기도 한 건설현장에서 하루 12시간씩 18일을 일했지만, 그가 계약을 맺은 마루 공사 업체는 나흘만 일한 것으로 월급 명세서를 발급해 4일 치 일당을 줬다. 나머지 14일 치 일당은 ‘성과급’이란 이름으로 따로 처리했다. 그 뒤로는 명세서를 주지 않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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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노동자의 주거비 고통

서울에서 일하는 물리치료사 유정인(가명·28)씨는 충남에서 초등학교부터 대학까지 모두 나왔다. 2019년 3월 한 사립대 물리치료학과를 졸업하고 상경(上京)했다. 그는 “수도권이 일거리가 훨씬 많고 물리치료와 관련한 교육·연수·인맥 등이 몰려 있어서 장기적으로 경력에 도움이 될 거라 생각했다”고 말했다. 5년의 서울살이는 기대보다 낮은 월급, 생각보다 높은 주거비와 싸운 나날이었다. 첫 직장 월급은 당시 최저임금 수준인 180만원. 그중 4분의 1이 넘는 50만원이 7평짜리 서울 관악구 원룸 월세로 매달 빠져나갔다. 그는 “한 달에 30만~40만원을 겨우 모으니, 집값을 생각하면 높은 계단을 한 발씩 간신히 올라가는 느낌이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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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시장 바깥의 라이더들

한국은 ‘배달 공화국’이다. 코로나를 거치면서 배달은 국민이 편리하게 즐기는 식(食)문화를 떠받치는 산업이자 일상이 됐다. 온라인 음식 배달 서비스 거래액은 2019년 약 9조7400억원에서 작년 약 26조4000억원으로 늘었다. 23만7000명(2022년)의 라이더(배달원)가 일한다. 코로나 사태를 거치며 이들은 편리한 배달 산업을 일군 일등 공신이었다. 웬만한 대기업 근무자 못지않은 높은 소득을 올리는 사람도 잇따랐다. 특별한 자격 없이도 자유롭고 쉽게 라이더가 될 수 있어, 실업을 줄이는 효과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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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의 벽에 갇힌 노동자들

지난 14일 경기도의 한 11층 아파트 옥상에서 본 박태호(가명·31)씨의 일하는 모습은 위험해 보였다. 그는 이 아파트의 한 가정에 고속 인터넷을 설치하고 있었다. 옥상에 있는 통신 장비에 케이블 끝을 연결한 뒤, 다른 한쪽 끝을 고객 집 창문으로 집어넣는 작업이 한창이었다. 박씨는 통신 대기업 자회사 정규직이자, 11년 차 개통 기사다. 지난달 월급이 수당 등을 포함해 세후 286만원이었다. 그는 “나는 대기업 로고 있는 옷을 입고 일하지만 이 회사 직원 대우는 못 받는 사람”이라고 했다. 아웃소싱(outsourcing)은 기업이 경영 효율을 높이기 위해 생산이나 판매, 유통 등 본업 일부를 다른 기업이나 개인 등 제3자에게 맡기는 것이다. 외주(外注)나 하청(下請)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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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착 못하는 기간제 근로자

서울에 사는 송하연(29·가명)씨는 지금 다니는 직장이 7년 전 그가 사회생활을 시작한 이후 세 번째 회사다. 세 곳에서 모두 기간제 근로자로 일했다. 지금 월급은 240만원. 7년 전보다 40만원 올랐다. 올 연말엔 네 번째 직장을 알아봐야 한다. 지금 회사에서 일한 기간이 2년이 되기 때문이다. 월 50만원 적금도 넣다가 포기한 그는 결혼이나 출산 등 미래를 생각할 여유가 없다. 그는 “2년마다 실직과 구직을 반복하는 불안한 상황에서 장기적인 진로는 생각도 못한다”며 “우리 사회가 한 직장을 좀 더 오래 안정적으로 다닐 기회를 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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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져가는 이중구조의 벽

노동시장 이중구조 문제와 관련해 한국 사회 곳곳에선 조금씩 상생의 길을 찾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올해 1월 동국제강그룹이 사내 하도급 업체 20곳의 직원 889명을 모두 정규직으로 전환한 것도 그중 하나다. 지난 18일, 동국제강 인천 공장에선 크레인 6대로 퍼 올린 고철(철 스크랩) 더미를 120t(톤)짜리 전기로에 투입하는 작업이 한창이었다. 고철은 전기로에서 녹아 철강제품 원료인 ‘쇳물’이 된다. 이 크레인을 4조 3교대로 조종하는 24명도 올해 1월 1일 동국제강에 정규직 직원으로 입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