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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고 도는 게 유행이라지만 요즘 복고는 더 강력합니다. 옛것을 새로운 방식으로 멋지게 즐기는 ‘뉴트로’ 현상이 최근 몇 년간 인기입니다. 103년 역사가 숨 쉬는 조선일보는 복고의 원형을 살펴볼 수 있는 최고의 아카이브 입니다. 옛 신문과 함께하는 시간 여행을 통해 기성세대에겐 향수를, 젊은 세대에겐 재미를 선사합니다.

돌고 도는 게 유행이라지만 요즘 복고는 더 강력합니다. 옛것을 새로운 방식으로 멋지게 즐기는 ‘뉴트로’ 현상이 최근 몇 년간 인기입니다. 103년 역사가 숨 쉬는 조선일보는 복고의 원형을 살펴볼 수 있는 최고의 아카이브 입니다. 옛 신문과 함께하는 시간 여행을 통해 기성세대에겐 향수를, 젊은 세대에겐 재미를 선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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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 조선일보 문화부

그래픽 김현국·송윤혜

인터랙티브 조선디자인랩

경성에서 서울로 온 ‘모던보이·모던걸’
나팔바지를 입고 활보하는 모던보이를 묘사한 1928년 2월 7일 자 ‘가상소견’ 삽화. 오른쪽은 인천중구문화재단에서 지난해 개최한 ‘모던보이 & 모던걸 사진 공모전’에서 최우수상을 받은 작품이다. /조선일보 DB·인천중구문화재단 개항희망문화상권르네상스팀

“황금 팔뚝시계, 보석반지, 현대 녀성(여성)은 이 두가지가 구비치 못하면 무엇보담도 수치인 것이다.”
-1928년 2월 5일 자 ‘모-던껄의 장신운동(裝身運動)’
“미국 서부활극에 나아오는 ‘카-뽀이’(카우보이)의 가죽바지가 조선 청년에게 나팔바지를 입혀주었다.”
-1928년 2월 7일 자 ‘모던뽀이의 산보(散步)’


1928년 2월 시작된 코너 ‘가상소견(街上所見)’은 1·2회에서 각각 당시의 신풍속도였던 모던걸과 모던보이의 옷차림을 소개했다. 그것은 이채(異彩)인 동시에 근심거리이기도 했던 모양. 필자는 “현대 부모 남편 애인 신사제군 그대들에게 보석반지 금팔뚝시계 하나를 살 돈이 없으면 그대들은 딸 안해(아내) 스윗하-트(애인)를 둘 자격이 없고”라며 모던걸들의 허영을 돌려 꾸짖는 한편, 차려입고 뽐내는 모던보이들에겐 “다 쓰러져가는 초가집만 있는 조선의 거리에 그네들이 산보할때에 그는 외국의 풍정(風情)인듯 느끼리라. 대체 그대들은 아무 볼일도 없이 길로 싸다니는 까닭을 모르겠다”고 일갈했다.


모던걸·모던보이 옷차림이 오늘날 되살아났다. 이른바 ‘개화기 복장’으로 서울 익선동·정동, 인천 개항장거리처럼 근대 여명기의 정취가 남은 장소를 찾는 일이 젊은이들 사이에서 놀이처럼 자리 잡았다. 의상을 대여해주는 업체들도 생겨났다. 때론 가장 오래된 것이 가장 새로울 수 있다. /채민기 기자

국산 올드 카 열풍
1976년 1월 25일 자에 실린 ‘포니’ 광고. 다음 날인 26일부터 역사적인 포니 계약이 시작됐다. 아래는 지난해 방한한 포니 디자이너 조르제토 주지아로와 포니 쿠페 디자인에서 영감받아 지난해 선보인 콘셉트카 ‘N Vision 74′. /조선일보 DB·현대자동차

“우리나라의 서민들에겐 아직까지도 자동차가 한낱 사치품에 지나지 않지만 잘사는 나라의 국민일수록 자동차를 생활의 일부를 구성하는 필수품으로 생각하고 있는 듯싶다.”


‘자동차 2500만 대 시대’에 격세지감 드는 이 문장은 1977년 3월 26일 자 본지 기사의 도입부. 1976년 판매를 시작한 포니가 그 이듬해 스위스 제네바 모터쇼에 출품됐을 때 최청림 당시 경제부 기자의 현장 르포였다. 최 기자는 포니가 “유럽인 기호에 맞는 차로 호평받았다”면서 자긍심을 한껏 고취했다. “외국 사람들도 품질 및 가격에 대해 우려하고 있으나 생산시설을 국제화하고 기술적인 문제점을 극복해서 수출 첫해부터 그와 같은 걱정과 우려를 말끔히 씻어놓겠다”던 정주영 회장의 호언장담(1975년 7월 19일 자 본지 인터뷰)이 어느 정도 현실이 된 듯했다.


1970년대 수출보국(輸出報國)의 상징인 포니가 복고 물결을 타고 돌아왔다. 현대차는 1974년 포니와 함께 콘셉트카로 나왔다가 양산되지 않은 ‘포니 쿠페’에서 영감받은 콘셉트카 ‘N Vision 74′를 지난해 선보였다. 올봄엔 당시 디자인을 담당한 이탈리아 디자이너 조르제토 주지아로(85)가 50년 만에 다시 참여해 ‘포니 쿠페’ 콘셉트를 복원할 계획이다.


포니의 부활은 ‘국산 올드 카’를 멋으로 즐기는 젊은 세대의 취향을 반영하는 현상인 동시에 1970년대 제품을 헤리티지(유산)로 받아들일 만큼 한국 사회가 성숙했음을 보여주는 단면이다. /김미리 기자

할머니 입맛의 부활 ‘할매니얼’
1993년 3월 21일 자에 실린 붕어빵 트럭 사진. 당시 불던 복고 바람의 대표 사례로 등장했다. 아래는 ‘붕세권’이라는 신조어가 등장할 정도로 요즘 젊은이들에게 사랑받고 있는 붕어빵. /조선일보 DB

“가난했던 1950~60년대 시절을 회고케 하는 ‘붕어빵’이 최근 서울 도심 한복판에도 등장,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


본지 1993년 3월 21일 자에 실린 ‘복고풍 인기’ 소개 기사의 일부다. 당시 서울 명동과 강남 도심, 그리고 대학가에선 판탈롱(나팔) 바지와 앙증맞은 크기의 동그란 안경테가 불티나게 팔렸다. 모두 1950~1960년대 인기 상품이었다. 특히 눈에 띈 건 광화문 빌딩가, 강남 아파트촌을 누빈 ‘붕어빵 트럭’의 인기다. 아버지들이 퇴근길마다 품고 오던 간식거리 대명사에 대한 추억 혹은 정보화·기계화에 대한 반작용이란 분석이 이어졌다. 어느 쪽이건 ‘예스러운 정’에 대한 그리움이 배경이란 뜻이다.


그로부터 30년이 흐른 2023년에도 같은 풍경이 재현되고 있다. 부모 세대는 물론 자녀 세대까지 붕어빵을 찾아 ‘붕세권(붕어빵 가게 인근 권역을 역세권에 빗댄 말)’ 검색 서비스까지 생겼다. 복고풍 패션과 함께 ‘할매니얼(할머니+밀레니얼)’이란 신조어도 유행이다. MZ 세대에서 약과와 떡, 바나나맛 우유와 삼각커피 우유, 오란다 강정, 곶감 등 할머니 세대의 음식을 추앙하는 흐름을 일컬어 생긴 말이다.


어쩌면 우리의 미각은 혀끝 음식 잔상만이 아닌, 기억을 계승하는지도 모른다. 2023년 우리가 맛본 붕어빵들은 30년 뒤 어떤 옛정으로 전해질까. /윤수정 기자

워크맨, 카세트테이프의 귀환
1983년 6월 26일 자에 실린 ‘워크맨’ 광고. 오른쪽은 워크맨을 매개로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대만 드라마 ‘상견니’의 한 장면. 한국 젊은 층에 인기를 끌며 워크맨과 카세트테이프도 소환됐다. /조선일보 DB·상견니 공식 홈페이지

“영롱한 화음을 언제 어디서나 들려드리는 워크맨이기에 거리에서나, 야외에서, 스포츠 관람 때도 동반자입니다.”


본지 1988년 12월 23일 자에 실린 소니 워크맨 광고의 문구다. 1979년 세상에 나온 워크맨은 음악 감상의 성격을 송두리째 바꿔놓은 ‘유비쿼터스 혁신’과도 같았다.


이후 음악 감상 매체는 ‘집에서 오디오를 들을 때는 레코드판(LP), 밖에서 워크맨을 들을 때는 카세트테이프’로 양분(兩分)됐다. 마이마이·아하·요요 같은 국산 소형 플레이어도 등장했는데 통칭은 ‘워크맨’이었다. 도서관에선 단골 도난 품목이었으며, 배터리를 조금이라도 아끼기 위해 되감기 버튼을 누르는 대신 테이프 한쪽 구멍에 연필을 넣어 돌리는 등 별별 추억거리도 많았다.


세월이 흘러 MP3와 스마트폰에 그 자리를 넘겨주게 된 워크맨은 2013년 단종됐다. 그러나 최근 뜻밖에도 워크맨의 중고 거래와 카세트테이프 판매가 되살아났다. ‘기묘한 이야기’ ‘상견니’ 같은 드라마를 본 MZ 세대가 주도한 레트로 현상이었다. 영국의 경우 2020년 한 해 전년의 2배인 15만 개가 넘는 카세트테이프가 팔려나갔다. 소니는 고급형 MP3 플레이어인 DAP(디지털 오디오 플레이어)에 ‘워크맨’이란 고색창연한 이름을 넣었다. 사라질 줄만 알았던 LP도 끈질기게 살아남아 여전히 음반점 한 귀퉁이를 차지하고 있다. /유석재 기자

두꺼비의 금의환향
의인화된 귀여운 두꺼비가 건배하는 모습을 손으로 그린 1960년 6월 22일 자 진로 소주 광고. 오른쪽은 2019년 ‘진로이즈백’이란 슬로건으로 다시 돌아와 젊은 세대에 열풍을 일으킨 진로의 두꺼비 캐릭터. /조선일보 DB·하이트진로

“의인화한 귀여운 두꺼비와 세 가닥 머리에 주먹코를 한 사내가 건배한다. 펜으로 쓱쓱 그려 손맛이 살아 있는 그림에 손 글씨까지 더해진 그림.”


요즘 그림 같지만, 63년 전 본지 1960년 6월 22일 자에 실린 진로 소주 광고다. 만화 속 사내는 당시 장안의 화제였던 안의섭(1924~1994) 화백의 네 칸 시사만화 ‘두꺼비’의 주인공을 닮았다. 본지 아카이브에서 발견한 이 지면 광고는 하이트진로에도 남아 있지 않은 귀한 콘텐츠다.


한동안 사라졌던 이 귀여운 두꺼비가 금의환향했다. 지난 2019년 뉴트로 열풍을 타고 24년 만에 광고 캐릭터로 부활해 복고 마케팅의 대명사가 된 것. ‘진로이즈백(진로 is back)’이라는 슬로건으로 요즘 감성을 더해 광고부터 패키지, 굿즈에도 적용돼 수년째 MZ 세대들에게 폭발적 인기를 끌고 있다. ‘이즈백’은 인기 콘텐츠의 귀환을 상징하는 신조어처럼 쓰인다. 다시 돌아온 포켓몬빵 광고 문구엔 ‘포켓몬빵이즈백’으로 패러디됐다.


시각 디자인에 예민한 요즘 2030들의 눈에 옛 광고의 그림체와 서체는 멋과 재미로 다가간다. 진로뿐만 아니다. 공효진이 모델로 등장해 빨간 보온병과 로고가 찍힌 머그컵 등을 들고 옛날 느낌으로 찍은 맥심 광고, 옛날 만화영화 분위기로 만들어 최근 선보인 삼성화재 다이렉트 보험 광고 등도 같은 맥락이다. /김미리 기자

1996년 H.O.T. ‘캔디’ vs 2023년 NCT 드림 ‘캔디’
‘환상인 줄 알면서도 속아주는 꿈’이라는 제목으로 1999년 1월 26일 자에 실린 소설가 김영하의 H.O.T. 콘서트 관람기. 아래는 H.O.T.의 대표곡 ‘캔디’의 노래와 춤을 그대로 리메이크한 ‘NCT 드림’. /조선일보DB·SM

“우리는 이들이 던져주는 가짜 희망과 실현되지 못할 약속에 속을 준비가 충분히 되어 있다. 또 기꺼이 속는다. 그렇게 한 시절 미친 듯 좋아하며, 그 꿈과 우리의 청춘을 맞바꾼다.”


본지 1999년 1월 26일 자, ‘환상인 줄 알면서도 속아주는 꿈’이라는 제목으로 당시 서른한 살 소설가 김영하가 쓴 한 아이돌 콘서트 관람기 일부. 다음 날 오피니언 면엔 “10대 팬들의 반론이 팩스, 편지, 컴퓨터 통신 등을 통해 수십 건씩 쏟아지고 있다”며 반박 글이 실렸다. 한 여학생은 소설가를 향해 “아저씨는 누구를 (무조건적으로) 사랑한 적이 없는 것 같군요”라고 울분을 토했다.


관람기 하나로도 뜨거운 이슈를 불러일으킨 대상은 당시 최고 인기 아이돌 그룹 H.O.T.. 1996년 데뷔한 H.O.T.는 1세대 한류 아이돌이다. ‘K팝’이란 단어가 쓰이기도 전인 1998년 한국 가수 최초로 중국 진출에 성공, 현지 언론에서 “한류 폭풍”이라고 보도했다.


지난 12월 가요 차트에서 1996년 발매된 이들의 출세곡 ‘캔디(Candy)’가 1위를 석권했다. 요즘 아이돌 ‘NCT드림’이 이 곡을 리메이크한 것. 어느덧 아이돌이 복고의 대상이 됐다. X세대 엄마와 MZ세대 딸이 같은 노래를 흥얼거린다. 캔디 무대 의상이 졸업 사진 대여복으로 인기다. ‘아이돌의 인기는 많아도 오래가는 명곡은 적다’는 요즘, 고민 해결사로 전 세대 아이돌이 소환되는 현상은 이어질 듯하다. /윤수정 기자

‘산소 같은 여자’ 이영애도 입었던 배꼽티, 뉴진스로 돌아오다
‘배꼽 고리를 아십니까’라는 제목으로 배꼽티 유행과 함께 배꼽에 끼우는 액세서리 유행을 다룬 1996년 5월 23일 자 기사. 아래는 Y2K 패션을 전면에 내세워 세계 패션계를 강타한 뉴진스. /조선일보DB·어도어

“과다 노출로 눈총을 받기도 했던 배꼽티가 한층 대중적으로 자리 잡을 전망이라고 패션 관계자들은 말한다. 옷의 허리선이 골반에 걸치게 되는 힙본 스타일, 생동감 있는 민트·오렌지·레몬색, 광택 소재 등이 여름에도 그대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다가올 여름 ‘패셔니스타’로 거듭나기 위한 조언. 최근 ‘4세대 걸그룹’의 대표 주자인 ‘뉴진스’ 스타일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하지만, 1996년 4월 15일 자 본지 기사의 일부다. 글로벌 패션계를 강타한 뉴진스가 내세운 ‘Y2K 스타일(1990년대 말부터 2000년대 초 유행한 패션)’의 원형인 셈이다.


당시 배꼽티 인기는 뜨거웠다. ‘산소 같은 여자’로 불린 청순 배우 이영애도 예능 MC로 나서면서 배꼽티를 입어 ‘배꼽티 MC’라 불렸다(1995년 12월 9일 자, 윤정호 기자). 배꼽에 꽂는 액세서리 유행을 다룬 ‘배꼽 고리를 아십니까’(1996년 5월 23일 자, 이미경 기자)라는 기사도 실렸다.


1998년 4월 5일 자 ‘IMF 첫 여름’ 여성 노출 화끈해진다’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선우정 기자는 “‘불황=노출’은 세계 패션 흐름의 공통된 등식”이라며 “올여름 한국에서도 ‘속옷’ 노출 패션이 불황에 찌든 사람들을 위로해줄 것으로 패션 전문가들은 확언하고 있다”고 썼다. 경제 불황이 연일 뉴스를 장식하는 요즘, 25년 전 기사는 미리 읽는 내일 자 신문인지도 모르겠다. /최보윤 기자

다시 돌아온 슬램덩크
슬램덩크의 인기를 다룬 1994년 5월 13일 자 본지 ‘생활과 만화’ 코너 기사. 오른쪽은 지난 1월 개봉한 영화 ‘더 퍼스트 슬램덩크’를 보려고 극장을 찾은 관람객들. /조선일보DB·연합뉴스

“요즘 국민학생부터 대학생 사이에서는 농구 만화 ‘슬램덩크’를 모르면 대화에 낄 수 없다고 한다.··· 대중문화산업에 미치는 만화의 영향력이 점차 커지고 있다.”


1994년 5월 13일 자 조선일보 ‘생활과 만화’ 코너에 실린 기사 일부다. 박해현 기자가 만화 시장 규모 5000억원 시대를 돌아보며, 해외 만화 인기의 양면을 고찰하는 기사였다.


그리고 20년 뒤 ‘슬램덩크’는 극장판 애니메이션으로 재탄생해 관객 381만명을 돌파하며 국내 일본 애니메이션 흥행 역대 1위에 올랐고, 두 달 만에 단행본 100만부 발행이라는 신드롬을 일으키고 있다. 당시의 학생들이 왕년의 추억에 잠기며 해당 만화를 ‘뉴트로’로 소환한 것이다. 이 놀라운 역주행에 원작자 이노우에 다케히코(56)는 트위터에 한글로 “벌써부터 많은 분들이 봐주시다니 기쁩니다”라는 감사 인사를 올렸다.


2023년 1월 20일 자 조선일보에는 이런 기사가 실렸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은 2023년 콘텐츠 산업 전망 키워드 중 하나로 ‘콘고지신’을 선정해 지난달 발표했다. 사자성어 온고지신(溫故知新)과 콘텐츠의 합성어로, 과거의 콘텐츠를 활용해 새로운 수요를 창출하는 전략을 뜻한다. …그 대표적 사례가 ‘슬램덩크’다.” 한국 만화 시장은 웹툰 시장으로 재편돼 매출 규모 1조원을 넘어섰다. /정상혁 기자

25년 만에 돌아온 타이타닉
영화 ‘타이타닉’이 개봉했을 당시 1998년 2월 6일 자 조선일보 영화면 기사. 아래는 25년 만인 지난달 재개봉한 타이타닉 포스터. X세대 엄마와 MZ 세대 딸이 함께 보는 ‘재개봉 영화’가 늘고 있다. /조선일보DB·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타이타닉호에서 로즈(케이트 윈즐릿)를 판자 위로 구해놓은 잭(리어나도 디캐프리오)은 바다에서 얼굴만 내민 채 말한다. “당신을 만난 것에 얼마나 감사했는지 몰라. 우린 언젠가 죽겠지만 지금 여기는 아냐. 약속해줘. 살아남겠다고.””


1998년 2월 6일 자 조선일보 영화 면에 김명환 기자는 이 대사를 인용하며 “제임스 캐머런의 ‘타이타닉’은 2억8000만달러짜리 스펙터클만으로 관객을 누르려 하지 않는다. 사랑·스릴·유머, 인간의 오만에 대한 경고 등 재미와 메시지를 결합한 장인의 솜씨”라고 평했다.


‘타이타닉’은 25년 만인 올해 2월 고화질 3D로 재개봉했다. 역대 재개봉 외화 첫 주말 박스오피스 최고 기록(15만여 명)을 세우며 생명력을 증명했다. CGV 통계로 관객은 20대(35%)가 가장 많고 30대(21%), 40대(16%) 순. “엄마와 같이 봤는데 역시 명작은 영원하다”는 후기가 보인다. 올드하겠거니 하던 영화가 젊은 세대에게 ‘뉴트로’로 신선하게 다가온 것이다.


‘타이타닉’은 침몰하는 호화 여객선에서 펼쳐지는 로미오와 줄리엣 이야기다. 사랑과 희생을 다뤄 감동을 준다. 여성과 노약자, 어린이를 살리려고 구명 보트 자리를 양보하는 장면은 다시 봐도 우아하다. 역사적 사실에 ‘지금 우리 모습’을 투영한 이야기는 시간의 침식을 이겨낸다. 지구온난화가 빙산처럼 직진해온 2023년에 ‘타이타닉’은 더 유의미하다. /박돈규 기자

이건희 컬렉션, RM이 점화한 한국 미술 재조명
조선일보 주최 ‘제2회 전 조선학생미술전람회’ 수상작 전시 기사가 실린 1938년 10월 15일 자 신문. 오른쪽은 그해 전람회에서 사장상을 탄 장욱진(당시 양정중학 재학생)의 작품 ‘공기놀이’. /조선일보DB·장욱진미술문화재단

“본사장상(本社長賞)을 획득한 양정중학 장욱진군의 ‘공기놀이’ 단연 높은 두각을 나타내어 벽면 중앙에 진좌된 품이 과연 위풍당당하다.”


1938년 10월 14일 자 조선일보에 실린 본지 주최 ‘제2회 전 조선학생미술전람회’ 소개 기사이고, 장욱진군은 훗날 한국근현대미술의 대표 작가 중 하나가 된 화가 장욱진(1917~1990)이다. 장욱진은 이 대회로 화가의 길에 들어섰다. 1980년 3월 5일 자 조선일보에는 “나는 집안 어른 몰래 그림을 그려왔는데, 방사장상(方社長賞)을 받고 나서야 집안에서 그림 그리는 것을 묵인”했다는 장욱진의 글이 실려 있다.


올해 7월 국립현대미술관에서 대규모 ‘장욱진 회고전’이 열린다. “이중섭·박수근과 더불어 한국적인 정서를 구현한 대표적인 작가”의 ‘공기놀이’도 출품된다. 이 그림은 삼성 이건희 회장이 오래 소장하다 국가에 기증한 ‘이건희 컬렉션’에 포함돼 큰 관심을 받았다. 방탄소년단 리더 RM이 사랑하는 화가로도 유명하다. 전시장을 찾아 방명록에 “장욱진 짱”이라 적는 RM의 동선을 관람객들이 따라다니며 함께 열광하고 있다. 이 같은 관심 덕에 그간 서양 미술에 밀렸던 한국 근현대미술 열풍이 재점화하고 있다. 지난해 미국 LA카운티미술관에서 열린 ‘한국 근대미술전’ 등이 그 예다. 오는 4월에는 서울 소마미술관에서 ‘다시 보다: 한국근현대미술전이 예정돼 있다. /정상혁 기자